만들어진 신 : 신은 과연 인간을 창조했는가?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저 |이한음 역 | 김영사 |
단어 하나하나를 되새겨보자. 유신론자는 초자연적 지성을 믿는다. 그 지성은 우선 우주를 창조하는 큰일을 했을 뿐 아니라 여전히 주위를 맴돌면서 자신이 창조한 것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 유신론적 신앙 체계 내에서 신은 인간사와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는 기도자에게 응답하고 죄를 용서하거나 처벌하며, 기적을 이룸으로써 세계에 개입하고 선행과 악행에 시시콜콜 관심을 가지며, 우리가 언제 선행과 악행을 행하는지(더 나아가 그런 행위를 할 생각을 하는지)안다. 한편 이신론자는 초자연적 지성을 믿지만, 그 지성이 우주를 지배하는 법칙들을 설정하는 일에만 관여할 뿐 인간사에 개입하거나 관심을 갖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범신론자는 초자연적인 신을 아예 믿지 않지만 신이라는 단어를 자연이나 우주 또는 그 움직임을 지배하는 법칙을 가리키는 비초자연적 동의어로 사용한다. 이신론자는 신이 기도자에게 응답하지 않고 죄나 고백에 관심이 없으며, 우리 생각을 읽지 않고 변덕스러운 기적을 부리지 않는다고 본다는 점에서 유신론자와 다르다. 이신론자는 신이 일종의 우주적 지성이라고 보는 반면 범신론자는 신을 우주 법칙의 비유적 또는 시적 동의어라고 본다는 점에서 다르다. 범신론은 매력적으로 다듬은 무신론이다. 이신론은 물에 타서 약하게 만든 유신론이다.
"신은 심술궂지만 악의적이지는 않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선택을 했을까?" 같은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말들은 이신론적이거나 유신론적이지 않고 범신론적이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말은 "만물의 핵심에 무자위성이 자리 잡고 있지는 않다"는 말로 번역되어야 한다. "신은 우주를 창조할 때 선택을 했을까?"라는 말은 "우주가 다른 식으로 시작되었을 수 있을까?"라는 의미다. 아인슈타인은 신을 순수하게 비유적인, 시적인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이는 호킹도 마찬가지다. 이따금 종교적인 비유를 사용하는 물리학자들도 대부분 그렇다. 폴 데이비스(Paul Davis)의 <신의 마음>은 아인슈타인 식의 범신론과 모호한 이신론 사이를 떠도는 듯하다. 그 책은 그에게 템플턴상(템플턴 재단이 매년 수여하는 상금이 꽤 많은 상으로서 대개 종교에 관해 멋진 말을 한 과학자에게만 수여된다)을 안겨주었다.
아인슈타인이 한 마을 하나 더 인용함으로써 아인슈타인식의 종교를 종합해보자. "경험할 수 있는 무언가의 배후에 우리 마음이 파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으며, 그 아름다움과 숭고함이 오직 간접적으로만 그리고 희미하게만 우리에게 도달한다고 느낄 때, 그것이 바로 종교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종교적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 역시 종교적이다. "파악할 수 없는" 이라는 말이 "영구히 파악이 불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조건을 달아야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나는 스스로를 종교적이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으니까. 그 오해는 파괴적이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종교는 초자연적인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세이건은 그런 상황을 멋지게 표현했다. "신이라는 말이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 법칙들을 의미한다면, 그런 의미의 신은 분명히 존재한다. 이 신은 정서적인 만족을 주지 않는다...... 중력 법칙을 향해 기도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흥미롭게도 미국 가톨릭 대학교의 교수 겸 사제인 풀턴 쉰(Fulton J. Sheen)은 세이건의 마지막 말과 같은 취지의 말로 인격신을 부인한 아인슈타인을 맹공격했다. 쉰은 은하수에 자신의 삶을 내맡기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며 빈정댔다. 그는 자신의 아인슈타인을 옹호하는 게 아니라 반박하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이렇게 덧붙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의 우주적(cosmic) 종교에는 오직 한 가지 결함이 있다. 그 단어게 's'를 넣었다는 사실 말이다." 아인슈타인의 신념에 우스꽝스러운(comic) 부분은 전혀 없다. 그러나 나는 물리학자들이 비유적인 의미로 신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물리학자들의 비유적 또는 범신론적 신은 성서에 나오는, 그리고 사제와 이맘과 랍비가 말하는 신 즉, 인간사에 간섭하고 기적을 일으키고 우리의 생각을 읽고 죄를 벌하고 기도에 답하는 신과 아득히 멀다. 둘을 일부러 혼동시키는 것은 지적인 반역 행위다.
- 리처드 도킨스, 『만들어진 신』 '믿음'을 믿다 중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