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서평 읽기,
Redian ☞ [서평]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본격 '호러 경제학'
시사in ☞ ‘명랑’한 경제학자 ‘생태·평화’를 말하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처음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앞서기 시작한 날, 나는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었다. 마침 거리 가판대에서는 『르몽드』의 호외가 필리고 있었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그것도 본 선거도 아니고 아직도 몇 달이나 남은 후보 경선 과정의 한 지역선거 결과에 이처럼 호외까지 내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고,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지금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진지하게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제국 중의 제국이니, 그 제국의 사령탑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호외를 발행하면서까지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걸까?
15년 전 아버지 부시를 제치고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던 순간, 나는 역시 파리에서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8년 주기로 바뀌던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권교체가 4년 정도 일찍 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 내 오래된 기억이다. 그렇다면 1993년부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15년이란 기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제일 먼서 한 외교적 결정은, 소말리아의 미 해병과 델타포스를 철수시킨 일이었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게 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선 과정 중의 일개 지역 선거 결과에 『르몽드』가 이토록 호들갑을 떨면서 호외까지 발행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확히 얘기하면 클린턴 2기, 깅그리치가 지휘하는 공화당의 강경파들(네오콘)이 미국 의회를 접수한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큰 흐름은, 군사적으로는 팽창적 군사패권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무역에서는 강성 보호무역주의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결과가 '강한 달러'의 시대였다. 혹자는 이것을 뭉뚱그려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의 통합'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강화'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쉽게 말하면, 지난 11년간 세상은 네오콘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네오콘의 시대가 쇠락의 길에 접어든 것은, 2007년 미국 의회에서 민주당이 다시 다수파가 된 순간부터다. 도저히 그런 용어를 사용할 것 같지 않던 미국 무역대표부에 '공정무역Fair Trade의 정신'과 '호혜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그 순간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서 이런 무역 문서를 보게 되다니.
멈추지 않는 영광의 상징과도 같았던 '강한 달러'의 시대가 어느덧 끝나고, 공정무역과 평화를 앞에 내세운 버락 오바마의 선전이 이어지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세계 무역체제에 새로운 변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오는 중이다. 공화당 후보 매케인도 네오콘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정치인이다. 결국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현재의 질서는 구질서가 되고 세계체제는 변화하게 된다. 5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던 시기의 국제경제에 대한 여러 예측 및 분석과 비교하면, 이런 시기가 오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제 무역도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정치도 변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변화가 새로운 형태의 '강한 달러'를 만들어낼까? 그것은 모르겠지만, 국제 역학관계는 많이 변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전성기를 달리던 신자유주의가 한풀 꺾일 것은 확실해 보인다. 3년 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있을 수 없고, 세계화에 적응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외쳤는데, 그 신자유주의도 이제 클라이맥스를 지나서 쇠락기에 접어든 셈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가 한국에 약간의 변화라도 불러오게 될 것인가? 연구자로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변화가 한국에 별 파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명박이 어떤 사람인가? 그가 대화와 타협을 하는 스타일이던가? 더욱 굴절되고 강화된 스타일로, 한국은 북한과도 충돌하고 일본, 중국과도 틈틈이 충돌하며, 왜곡된 경제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전 세계의 시장과 자원을 무한정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패권적 민족주의로 중국이란 '제국'의 재탄생을 도모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순탄치 않은 한중관계의 출발점이 될 위험이 여럿 도사리고 있다. 성화 봉송 중에 서울에서 벌어졌던 중국인들의 폭력시위를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는 앞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커져 나갈 이런저런 충돌의 서곡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은 중국의 내수시장 진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제국의 외형을 갖추어가는 이 특수한 나라와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일본 역시 지국까지의 '평화국가'에서 더욱 강한 군사력을 용인하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제국으로서의 예전 위용을 되찾으려는 일본과 한국은 앞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독도 문제 하나만으로도 한일 관계는 언제든지 대결구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그러함에도 지금은 한국조차 '제국의 길'이란 호랑이 등에 스스로 올라타 있는 형국이다. 그러한 징후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각기 팽창일로에 들어선 동북아 3국이 평화경제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 아니겠는가.(후략)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중에서 발췌.
책은 위의 글을 시작으로 하여 닫는 말은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 라는 장으로 마친다. 책의 시작부터 '10 대들이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는 이 나라의 다음 주자들이 사고하기를 고대해 마지 않고 있다. 바람직하고 원하는 바이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향력'을 잔뜩 갖고 싶다는 것이다. 12살 조카가 이 책을 어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렴풋이 '그러하리라' 짐작하던 것이 '그러하다'로 정의되는 순간은 눈앞에 들이 댄 칼날처럼 번쩍 정신이 들게 한다. 살수록, 알수록, 생각 할수록 '이런 나라, 살기 싫다' 싶은건 오늘의 나 하나 뿐이 아니겠지. 세상은 자꾸만 희망을 비웃고, 관념 따윈 장농 위의 먼지가 된다. 하루에 다섯번, 여섯번 쯤 괴롭다. 사고하고 있음의 증거로 기꺼워한다. 쓸쓸한 밤이다.
Redian ☞ [서평]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본격 '호러 경제학'
시사in ☞ ‘명랑’한 경제학자 ‘생태·평화’를 말하다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 후보 선출 과정에서 처음으로 힐러리 클린턴을 앞서기 시작한 날, 나는 파리에서 서울로 돌아오기 위해 길을 나서고 있었다. 마침 거리 가판대에서는 『르몽드』의 호외가 필리고 있었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그것도 본 선거도 아니고 아직도 몇 달이나 남은 후보 경선 과정의 한 지역선거 결과에 이처럼 호외까지 내는 것은 정말 이례적인 일이기도 하고, 매우 신기한 경험이었다. 물론 지금의 미국 대통령 선거는 전 세계가 온 신경을 곤두세워 진지하게 주시하고 있는 중이다. 언어학자 소쉬르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국은 제국 중의 제국이니, 그 제국의 사령탑이 누가 되느냐 하는 게 중요한 일이긴 하다. 그렇다고 이렇게 호외를 발행하면서까지 이 사건의 추이를 지켜봐야 하는 걸까?
15년 전 아버지 부시를 제치고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던 순간, 나는 역시 파리에서 학생으로 공부하고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저 8년 주기로 바뀌던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 사이의 정권교체가 4년 정도 일찍 왔다는 것 이상의 의미는 없었다는 것이 내 오래된 기억이다. 그렇다면 1993년부터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이 15년이란 기간에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일까? 클린턴이 대통령이 되고 제일 먼서 한 외교적 결정은, 소말리아의 미 해병과 델타포스를 철수시킨 일이었다. 만약 오바마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이라크에서 전격적으로 철수하게 될 것인가?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경선 과정 중의 일개 지역 선거 결과에 『르몽드』가 이토록 호들갑을 떨면서 호외까지 발행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정확히 얘기하면 클린턴 2기, 깅그리치가 지휘하는 공화당의 강경파들(네오콘)이 미국 의회를 접수한 시기로부터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던 큰 흐름은, 군사적으로는 팽창적 군사패권주의, 경제적으로는 신자유주의, 그리고 무역에서는 강성 보호무역주의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겨난 결과가 '강한 달러'의 시대였다. 혹자는 이것을 뭉뚱그려 '세계화' 혹은 '신자유주의적 질서로의 통합' 혹은 '워싱턴 컨센서스의 강화'라는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이를 쉽게 말하면, 지난 11년간 세상은 네오콘이 지배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영원한 것은 없다고 했던가? 이렇게 끝날 것 같지 않던 네오콘의 시대가 쇠락의 길에 접어든 것은, 2007년 미국 의회에서 민주당이 다시 다수파가 된 순간부터다. 도저히 그런 용어를 사용할 것 같지 않던 미국 무역대표부에 '공정무역Fair Trade의 정신'과 '호혜성'이라는 단어가 등장한 것이다. 경제학자로서, 나는 그 순간에 내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살아서 이런 무역 문서를 보게 되다니.
멈추지 않는 영광의 상징과도 같았던 '강한 달러'의 시대가 어느덧 끝나고, 공정무역과 평화를 앞에 내세운 버락 오바마의 선전이 이어지고, 미국의 국제적 위상과 세계 무역체제에 새로운 변화가 현재진행형으로 오는 중이다. 공화당 후보 매케인도 네오콘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정치인이다. 결국 누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현재의 질서는 구질서가 되고 세계체제는 변화하게 된다. 5년 전, 노무현이 대통령이 되던 시기의 국제경제에 대한 여러 예측 및 분석과 비교하면, 이런 시기가 오게 될 것이라고 상상한 사람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이제 무역도 변하고, 경제도 변하고, 정치도 변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변화가 새로운 형태의 '강한 달러'를 만들어낼까? 그것은 모르겠지만, 국제 역학관계는 많이 변할 것이고, 무엇보다도 전성기를 달리던 신자유주의가 한풀 꺾일 것은 확실해 보인다. 3년 전,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은 있을 수 없고, 세계화에 적응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을 것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외쳤는데, 그 신자유주의도 이제 클라이맥스를 지나서 쇠락기에 접어든 셈이다. 세상 오래 살고 볼 일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자본주의는 어떻게 될 것인가? 미국에서 시작된 이런 변화가 한국에 약간의 변화라도 불러오게 될 것인가? 연구자로서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불행히도 이런 변화가 한국에 별 파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같다. 이명박이 어떤 사람인가? 그가 대화와 타협을 하는 스타일이던가? 더욱 굴절되고 강화된 스타일로, 한국은 북한과도 충돌하고 일본, 중국과도 틈틈이 충돌하며, 왜곡된 경제의 길을 걸어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이미 전 세계의 시장과 자원을 무한정 빨아들이고 있는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을 거치면서 더욱 강력한 패권적 민족주의로 중국이란 '제국'의 재탄생을 도모해갈 것으로 보인다. 여기엔 순탄치 않은 한중관계의 출발점이 될 위험이 여럿 도사리고 있다. 성화 봉송 중에 서울에서 벌어졌던 중국인들의 폭력시위를 보면서 여러분은 무슨 생각을 하셨는지 모르지만, 이는 앞으로 계속 반복되면서 커져 나갈 이런저런 충돌의 서곡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한국은 중국의 내수시장 진출에만 관심이 있을 뿐, 정작 제국의 외형을 갖추어가는 이 특수한 나라와 어떻게 평화를 만들어갈 것인지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한편 일본 역시 지국까지의 '평화국가'에서 더욱 강한 군사력을 용인하는 '보통국가'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이렇게 제국으로서의 예전 위용을 되찾으려는 일본과 한국은 앞으로 평화로운 관계를 만들어갈 수 있을까? 독도 문제 하나만으로도 한일 관계는 언제든지 대결구도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한 상황이다. 그러함에도 지금은 한국조차 '제국의 길'이란 호랑이 등에 스스로 올라타 있는 형국이다. 그러한 징후들은 이미 차고 넘친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각기 팽창일로에 들어선 동북아 3국이 평화경제학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 아니겠는가.(후략)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중에서 발췌.
책은 위의 글을 시작으로 하여 닫는 말은 '교육 파시즘의 시대, 학교 파시즘에 부쳐' 라는 장으로 마친다. 책의 시작부터 '10 대들이 읽기를 바란다'는 저자는 이 나라의 다음 주자들이 사고하기를 고대해 마지 않고 있다. 바람직하고 원하는 바이다. 내가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는 '영향력'을 잔뜩 갖고 싶다는 것이다. 12살 조카가 이 책을 어서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
어렴풋이 '그러하리라' 짐작하던 것이 '그러하다'로 정의되는 순간은 눈앞에 들이 댄 칼날처럼 번쩍 정신이 들게 한다. 살수록, 알수록, 생각 할수록 '이런 나라, 살기 싫다' 싶은건 오늘의 나 하나 뿐이 아니겠지. 세상은 자꾸만 희망을 비웃고, 관념 따윈 장농 위의 먼지가 된다. 하루에 다섯번, 여섯번 쯤 괴롭다. 사고하고 있음의 증거로 기꺼워한다. 쓸쓸한 밤이다.

덧글